#1
1. 지나치게 강대한 왕권
비잔틴 제국의 황제(βασιλευς)는 법의 제정, 조세의 징수, 군대의 편성, 행정관 임명, 성직자 임명 등 강력한 왕권을 가지고 있었다. 이런 경우에 황제가 현명하면 국가가 혜택을 받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국민이 피해를 입는다.
#2
2. 백여 년간 이어진 페르시아와의 전쟁함
계속되는 전쟁으로 인하여 국민들에게 군사적 부담을 요구하였고, 이로 인한 제국의 피로가 누적되어 갔다.
#3
이로 인하여 이단 종파에 대하여 높은 세금을 요구하는 등 가혹한 처분을 내렸다. 이로 인하여 이단들이 아라비아반도로 이주하여 이슬람 형성에 밑거름이 되었으며 제국 내 이단들은 이슬람을 해방군을 맞이하였다.
#4
3. 딤미 백성
이슬람 치하에서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은 꾸란(9;29)에 의하여 딤미 백성으로서 2등 시민이 되었다. 딤미는 지즈야(Jizya)라는 인두세와 카라지(Kharaz)라는 토지세를 내야 했다. 세금을 못내면 노예가 되었고, 학살과 납치가 빈번하게 이루어졌다.
#5
이러한 일들은 이슬람이 지배하는 전역에서 일어났기에 기독교인들이 기독교 신앙을 유지하기보다 정치적, 경제적 실리는 택하여 이슬람으로 비자발적 개종이 일어났다.
#6
4. 십자군 전쟁
1095년 교황 우르반 2세가 클레르몽 공의회(Council of Clermont)에서 성지 예루살렘의 회복을 위한 대원정군 조직을 역설하였다. ‘하나님이 그것을 원하신다’(Deus lo volt)고 외치면서 시작되었다.
#7
정말 하나님의 뜻이었을까? 8차에 걸친 십자군 가운데 1차만 예루살렘으로 갔고 나머지는 오가는 길에 약탈을 일삼았다. 4차 십자군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여 라틴 제국을 세웠고 이로 인하여 비잔틴 제국의 멸망을 가속화 시켰다.
#8
5. 동. 서로마교회의 분열
서로마 카톨릭과 동로마 정교회가 1054년 서로를 파문하면서 분열하였다. 원인은 교리적인 이유보다 문화적인 이유가 훨씬 컸다. 초대교회는 서로 연합을 경험하는 시기였다. 그러나 로마교회는 분열을 거듭하였다.
#9
콘스탄티노플의 함락을 앞두고 로마에 지원을 요청하였다. 그러나 교황은 황제가 먼저 무릎을 끓으라고 하였다. 이 말을 전해 들은 동로마 황제의 측근인 루카스(Loukas Notaras)는 “로마 추기경의 모자보다, 술탄의 터번을 곧 보기 원한다.”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전사한다.
#10
오스만터키 전통에 의하면 술탄은 자신의 치세를 거창한 지하드로 시작하곤 하였다. 자칭 ‘기독교를 대항한 지하드의 지도자’였던 메헤메드 2세에 의하여 1451년 5월 29일 콘스탄티노플은 함락되었다.
#11
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 때, 시작된 비잔틴 기독교 제국은 콘스탄티누스 11세 때, 황제는 도망가지 않고, 백병전 속으로 뛰어들어, 동로마 천년 역사의 종장을 마무리 짓는다.
*출처 : 유해석 박사(Th.D)의 『신학 박사학위 논문』 중에서